미국 고등학생들은 운동에 진심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학교 끝나고 자연스레 학원으로 향하는 것처럼, 미국 고등학생들도 마지막 종이 울리면 서둘러 체육관으로 향한다. 곧 체육관은 학생들의 열정과 땀, 즐거움으로 가득 찬다. 해가 저물고 밖이 칠흑 같이 깜깜할 때, 그제야 얼굴에 미소와 함께 배고픈 배를 부여잡고 집으로 향한다.
나는 작년에 미국으로 유학 왔다. 운동이라곤 초등학교 때 태권도 정도 해본 게 다인 나에게 미국 고등학교 운동팀에서 운동을 한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해 보였다. 미국 학생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여러 운동을 접하고 중학교 때부터 학교 팀이나 클럽 팀 (일종의 운동 학원이라 볼 수 있겠다. 돈을 내고 클럽 팀에 속하면 레슨도 받고 대회에도 나간다.)에 속해서 경험과 실력을 쌓는다. 그에 반해 한 번도 진지하게 운동해 본 적 없는 나는 경험, 실력, 체력 등등 모든 면에서 다른 미국 고등학생들에 비해 부족했다. 그 갭을 매운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지만 나의 장점을 하나 꼽으라 한다면, 그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정신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도전한 운동은 배구이다. 당시 옛날부터 김연경 선수의 팬이었기에, 아무것도 모르지만 무작정 배구부에 들어갔다 (당시 고등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서 운동부에 들어오고 싶다면 누구나 받아줬다).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첫 훈련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설레는 마음과 함께 학교 끝나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앞으로 3개월 동안 매일 동고동락할 팀원들도 만나고 코치들도 만났다. 곧 훈련이 시작됐는데,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2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부족한 다리 근육은 다리에 쥐 나는 걸로 이어졌고 목은 타들어가듯이 말랐다. 그때 정말 처음으로 왜 축구 선수들이 쥐 나면 경기 중에 눕는지 이해가 갔다. 정말 이런 훈련을 매일 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하지만 매일 고된 훈련을 이겨내니, 어느 순간부터는 훈련 시간이 오기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배구 시즌을 재미있게 보내고, athletic trainer (운동 중 다친 학생들을 치료해 주시는 분)이 나에게 농구를 추천해 주셨다. 그 분과 굉장히 친해진 나는 고민 끝에 겨울 시즌에도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농구는 배구와 색달랐다. WNBA 선수 출신인 코치 아래 나는 농구를 처음 배우고 경기에 나섰다. 나중에는 실력이 정말 많이 늘어서 팀의 식스맨으로써 활약했다. 이 시즌은 내가 농구라는 스포츠와 사랑에 빠지게 해 주었다. 어떤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그냥 농구가 너무 좋았고 열정이 넘쳤다. 이 열정은 내가 팀 훈련이 끝나고 매일 2시간씩 남아서 개인 훈련을 할 힘을 주었다. 이런 노력과 열정은 코치와 팀원들로부터 존중과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운동을 3개나 할 생각은 없었지만 봄 시즌에 athletic trainer의 추천으로 소프트볼 팀에 입단하게 되었다. 소프트볼은 야구와 비슷한 운동이다. 큰 차이점들이라면 여자애들의 스포츠라는 것, 공이 크고 더 무겁다는 것, 필드가 더 작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차이점들 때문에 야구보다 더 쉬운 스포츠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투수와 타자 간의 거리가 짧아 반응할 시간이 적고, 배트가 야구 배트보다 더 작으며, 투수는 언더핸드로 던져야 해 투구폼을 배우기 어렵다. 미국에서도 야구와 소프트볼 중 뭐가 더 어려운지 논란이 많은데, 나는 둘 다 다른 이유로 어렵다고 말하고 싶다. 이 세상에 쉬운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소프트볼 팀에서 얼떨결에 포수가 되었다. 소프트볼 공이라곤 본 적도 없고 배트는 휘둘러 본 적도 없는 나에게 70km/h로 날아오는 공은 정말 무서웠다. 여러 번 미숙한 나의 실수로 공을 맞았고 내 몸은 퍼런 멍들로 물들었다. 또 미국 서부 사막의 뜨거운 햇살과 무거운 포수 장비는 정말 나는 시험했다. 이닝이 길어지면 다리가 불타고 머리가 핑 돌며,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그렇지만 포수라는 포지션의 특수성 덕분에 공을 잡는 것, 보는 것, 치는 것까지 정말 많이 늘었다. 어느 순간 공이 보이고 글러브로 잡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실력이 늘고 출전 시간의 점점 늘어날 때 느끼는 성취감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나의 스포츠로 가득 찬 1년이 끝이 났다.
지금까지 나의 첫 미국 1년간의 미국 고등학교 스포츠 이야기였다. 다음 편에서는 왜 이런 스포츠 활동이 미국에서 좋은 대학을 가는데 필요한지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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